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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oragen, 커버스토리] 칼빈대학교 김근수 총장대행

이봉근
2020-12-12
조회수 146

[커버스토리] 칼빈대학교 김근수 총장대행

출처: http://www.agoragen.com/?p=1762

2017년 5월 23일, 본지 편집국장 박기성(이하, 박국장)은 칼빈대학교 총장실에서 김근수 총장직무 대행(이하 김 총장)과 대담을 나누었다. 박 국장은 1985년 당시 김 총장께서 시무하시던 한가람교회에서 3~4대 총장을 역임하셨던 고, 김의환 박사를 강사로 개강수련회 개최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대담을 나누었다. 그러나 중간 중간에 한국교회와 신학의 흐름에 관해서 그리고 강단의 위기와 한국교회의 위기에 관해서 말할 때에는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여전히 볼 수 있었다.


한 대학의 총장을 역임하셨던 어떤 분은 “교단에서 10년을 봉직했으면 그분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머리에서 모자를 벗어 예를 갖추고, 20년을 봉직했으면 허리를 굽혀서 예를 갖추고, 30년을 봉직했으면 무릎을 꿇어서 예를 갖추라”는 말을 남겼다. 이런 의미에서 김총장은 칼빈대학교에서 30년을 넘게 봉직한 교수요 은사이며,목회자이고 후배들의 존경을 받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사표(師表)로서 존경할 만한 분이다.

박 국장 : 오늘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아고라젠’의 독자들에게 간략한 인사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김 총장 : 예, 대한민국의 최고의 기독교 명품잡지 ‘아고라젠’에서 저희 칼빈대학교를 찾아와서 이렇게 인터뷰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욱이 저의 제자였고, 함께 강의를 했었던 박국장께서 이렇게 인터뷰를 해 주시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부디 ‘아고라젠’이 이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높이고 한국교회가 말씀 중심의 교회, 말씀 중심의 목회자, 계시의 의미와 정신을 회복시키는 귀한 사명도 함께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박 국장 : 칼빈대학교의 역사를 간단히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 총장 : 저희 칼빈대학교는 한국전쟁 이후 ‘대한예수교 장로회의 역사’를 고이 간직하고 있는 학교입니다. 더욱이 합동과 통합이라는 교단 분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이 역사는 대부분 잘 모르는 부분입니다만, 1954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의 직영 야간신학교로 출발을 했습니다. 당시 동자동의 동성교회와 서소문의 평안교회를 거쳐서 용산구 청파동에 교사를 신축해서 칼빈신학교로 성장하다가 지금의 칼빈대학교가 된 것입니다.
본 교단의 총회가 분리되는 과정에서 합동측은 ‘칼빈신학교’, 통합측은 ‘서울장로회신학교’로 분열되는 아픔도 겪었습니다. 칼빈신학교로 출발하면서 김윤찬 목사님과 이주영 목사님을 거치며 학교는 많은 어려움을 지혜롭게 극복하여 이곳 신갈에 현재의 칼빈대학교가 성장할 수 있는 터를 닦아주셨습니다.

박 국장 :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분열의 아픔이 칼빈대학교에도 있었군요? 총장님께서 목회도 잘하시고 교수도 잘 하시는 분으로 정평이 나 있는데 ‘목회와 교수’에 관한 소회를 나눠 주시기 바랍니다.

김 총장 : 저는 전도사, 강도사 시절을 거 치면서 목회사역보다는 학교사역을 한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신학교 졸업하고 유학을 가려고 하는데 제가 섬기는 교회의 목사님께서 젊은 나이에 소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 교회를 맡아서 28세에 위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쁨과 감격보다는 ‘하나님께서 왜 나의 길을 막으시는가?’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총회에서 일을 하였는데 미국 비자가 거절이 되었지요. 그런데 총회에서 2년만 봉사하면 총회가 보증을 서 주기로 했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목회를 하게 되었답니다.

박 국장 : 처음부터 목회의 꿈이 있었던 것은 아니군요? 교수로서의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하심으로 목회를 하셨군요.

김 총장 : 그렇지요. 그런데 목회를 시작하면서 ‘사람의 변화’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가치관의 변화와 신앙의 성숙을 바라보면서 학교에서 발견할 수 없는 놀라운 경험을 하였습니다. 이런 목회의 좋은 경험을 하면서도 제 마음은 ‘유학을 하고 학교 일을 봐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4년 반 후에 그 일이 성취되었답니다. 교회에서 300명이 되면 유학을 보내기로 했었지요.

박 국장 : 짧은 시간에 큰 부흥을 이루셨습니다. 당시 300명의 성도를 포기하고 유학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결정을 하셨습니까?

김 총장 : 교회가 유학을 허락해서 후원도 하였답니다. 여하튼 2년 반의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이제는 교회 사역은 그만하고 학교 사역을 하고자 하였으나 교회의 강권으로 말미암아 ‘흑석동교회’를 ‘한가람교회’로 이름을 바꾸어 가면서 무려 16년간 교회를 섬겼습니다. 당시에 박 국장도 아시다시피 학교사역과 교회사역을 병행하였습니다. 그리고 16년의 사역을 마치고 교회에서 정상적으로 사임을 하고 두 번째 유학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박 국장: 저는 한 번의 유학도 쉽지 않아서 미국을 잠시 다녀오기는 했지만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는데 두 번의 유학을 결정하시는 것도 대단한 의지와 결단력입니다. 그 이후에는 학교사역만 전념하셨는지요?

김 총장 : 저도 그렇게 하는 것이 소원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교회를 놓치 않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귀국 후에 학교사역을 감당하면서 ‘분당’에서 ‘한울교회’를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개척을 하면서 저의 눈에 비늘이 벗겨졌습니다. 그것은 ‘한 영혼의 소중함을 깨닫는 기회’를 얻게 된 것입니다. 과거 목회 현장에서는 전혀 느끼지 못했지만 개척을 하면서 한 영혼이 너무나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린아이가 와서 떠들어도 너무 좋았습니다. 예전에는 목사에 반감을 가진 사람에 대해서 저도 반감을 가졌는데 이제는 그런 사람이 와도 얼마나 반가운지 말입니다. 그러면서 25년째이지요. 이제는 원로가 되고 후배에게 물려주고 교회를 상대로 하는 목회는 끝이 났지요. 그러나 저의 목회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목사님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련시키는 ‘새로운 신학적인 목회’에 시동을 걸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목회와 교수’라는 두 기둥을 함께 감당했으며 그것은 결코 분리할 수 없는 귀한 사역이었습니다.

박 국장 : 총장님의 ‘새로운 목회의 패러다임’이 궁금합니다. 목회자를 위한 교수 목회를 말씀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한국교회의 현실과 관련해서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총장 :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한국교회 강단의 위기와 침체의 위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러한 부분을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접근을 하고자 합니다. 저는 신약신학을 전공했는데 바라기는 우리 교단의 정책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박 국장 : 교단의 정책의 변화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를 말씀하십니까?

김 총장 :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에 이르면서 우리나라는 이단들이 우후죽순처럼 발흥하였습니다. 이것은 정부정책과 관련이 있습니다. 당시 문화공보부의 정책이 모든 종교를 동일시하여 이단도 교회와 동일하게 취급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일제 강점기나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민족의 고난을 가슴에 품고 민족적인 신임을 얻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대한민국이 시작하면서 교회들이 정권에 항거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교회들은 ‘한국교회가 다투어야 할 대상은 이단’이라는 방향을 새롭게 잡았습니다. 이것은 마치 요한계시록의 에베소교회가 진리와 다투다가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과 같은 현상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박 국장 : 이단과의 투쟁이 한국교회를 병들게 만들었다는 것인데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단과 싸우는 일은 대단히 중요한 일인데 어떻게 그렇게 되었습니까?

김 총장 : 이단과의 다툼은 자연스럽게 ‘사변적 신학’의 발달을 가져왔습니다. ‘흠증(변증)신학, 조직신학, 역사신학’ 등과 같은 사변적인 학문을 연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엇이 정통이며 그 정통의 특징은 어떤 신학인가?’하는 연구를 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자연스럽게 ‘성경 신학의 약화현상’을 유발하게 되었지요. 지금도 ‘강도사 고시’를 볼 때에 성경과목은 ‘설교와 주해’를 해 내면 통과입니다. 아주 쉽게 통과하지요? 그러나 조직신학과 역사신학을 보십시오. 서론부터 종말론까지, 초대교회사부터 현대교회사까지 달달 외워야 합니다. 구석에서 나와도 답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박 국장 : 저희 교단의 강도사 고시를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7년간의 학업을 총정리하는 것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총장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수정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김 총장 : 그렇습니다. 점점 계시보다 이성 쪽에 기울여지게 되지요. 우리 교단이 ‘성경을 강조한다’고 하지만 성경에 대해서 모르는 목회자가 양산되었습니다. 철학적으로, 변증적으로, 조직신학적으로, 역사적으로 말을 잘해요. 그러나 그것은 머리에서 머리로 가는 메시지이지 가슴을 파고들지는 못해요.

박 국장 : 가슴을 파고드는 메시지가 부재하다는 것은 곧 강단의 위기를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김 총장 : 그렇지요. 한국교회의 강단은 심각한 위기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강단이 조직신학자들이 외치는 강단처럼 되었어요. 이성을 상대하고 있어요. 가슴을 상대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이것은 성경말씀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가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약하기에 설교도 약하게 되고, 교회의 부흥도 안 되는 것이지요. 성도의 헌신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공부해야 합니다. 남의 이야기를 주워서 표절하는 설교가 너무 많고, 인터넷에서 다른 사람의 설교를 듣고, 베끼고 힌트를 얻어서 하는 설교는 절대로 자기 양들에게 맞지 않습니다. 설교를 표절하여서 설교하면 그것은 죽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죽고, 성도가 죽고 교회가 죽게 되는 것입니다.

박 국장 : 교단의 정책이 성경신학의 약화를 가져왔고, 그것이 신학생들을 사변적 신학을 배우게 했으며, 강단의 위기와 더불어서 교회의 몰락을 가져온다는 공식이 성립하는 것 같습니다. 총장님의 설교는 정평이 나 있는데 어떠하신지요?

김 총장 : 제가 목회하면서 느낀 개인적인 체험인데 어떤 때에는 성경을 읽으면서 말씀이 눈에 번쩍이며 들어와요. 마음에 감동이 되요. 그래서 그런 본문으로 설교를 하면 성도들도 번쩍이는 반응이 있어요. 그런데 제가 성경을 읽다가 감동이 없을 때 억지로 짜내는 설교를 하면 그 설교는 지루하고 길어지는 것입니다. 설교하면서 실패한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어요. 제 자신의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우리 교단이나 신학교들이 정말 종교개혁으로 돌아가고 정신을 차리려면 성경부터 철저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성경 외에 이상한 과목들이 너무 많이 들어와 있어요. ‘Primary’가 아니라 ‘Secondary’ 즉, 기본이 아니라 2차적인 것들을 너무 많이 가르치고 있어요. 이것은 다 잘못된 것입니다. 교수들을 위한 과목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을 고쳐야 합니다.

박 국장 : 오늘 총장님과의 인터뷰가 신학교의 위기, 강단의 위기, 한국교회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 볼 수 있는 것 같아서 너무 귀하고 좋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 행사들을 보면서 참 답답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뭔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는데 총장님의 의견은 어떠하신지요?

김 총장 : 종교개혁 500주년 행사가 많이 있지만 그것은 대부분 역사적으로, 철학적으로 조명하는 일에 그치고 있어서 안타까워요. “Back to the Scripture”, 즉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교수 몇 사람이 나와서 강의하는 행사가 아니라 성경 읽기로 돌아가고 성경 묵상으로 돌아가고 성경공부로 돌아가는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신학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 대해서는 많이 가르치지만 성경자체에 대해서 가르치지 않아요.

박 국장 : 저 역시 그 부분은 절대공감합니다. 그렇다면 칼빈대학교에서는 이런 부분에 대한 대안이 있나요?
김 총장 : 저희 학교에서는 그래서 성경만 공부하는 과정을 대학원에 개설합니다. 일반 성도나 사모님들은 M.A. 과정으로 하고 목회자가 오면 Th.M.으로 하고자 합니다. 목사들이 성경을 공부하려고 여러 세미나를 다니지만 만족을 찾지 못하는 것은 성경을 공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희 학교에서는 성경을 철저하게 가르치고자 합니다. 다른 신학을 무시하거나 그 신학이 중요하지 않음을 지적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 필요합니다. 그러나 성경신학이 약화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다시 강조하고 싶습니다.

박 국장 : 이런 일들을 구체적으로 하실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까?

김 총장 : 당연히 있습니다. 6월에 칼빈대학교 전체 동문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 세미나는 오직 순수한 성경만 가르치고자 합니다. 성경을 어떻게 읽고 설교로 만드는가 하는 것을 가르치고자 합니다. 저는 제 시간에 성경의 배경 역사, 본문 자체, 성경의 문맥과 맥락이 무엇인가를 강의할 계획입니다. 앞으로 시간이 되면 학교 기숙사에서 숙식을 다 제공하면서 동문들에게 먼저 도움을 주고자 합니다.

박 국장 : 동문들 외에 한국교회를 위한 계획은 어떠하신지요?

김 총장 : 서울 용산 캠퍼스에 평생교육원이 있습니다. 1년 2학기제로 ‘성경 원전 설교 세미나’를 개최합니다. 이미 학생들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성경의 원전을 독해하고 원전을 중심으로 설교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자 합니다. 말로만 성경 중심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성경중심의 신학, 성경중심의 교단, 성경 중심의 목회자, 성경 중심의 교회가 되는 길을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열어가는 칼빈대학교가 될 것입니다.

박 국장 : 총장님께서 앞에서 잠시 표절설교를 지적하셨습니다. 표절설교에 대한 막연한 비판은 많았지만 총장님처럼 역사적인 맥락에서 성경신학의 약화가 불러온 결과물이라는 정확한 진단은 너무나 핵심을 찌르는 말씀입니다.

김 총장 : 옛날에는 총신에 기둥과 같은 분들이 계셨습니다. 박윤선 박사께서 늘 주장하신 것이 있습니다. “계시, 의존, 사색을 해라. 하나님의 말씀을 의존해서 사색하라. 이성 중심 사색은 토마스 아퀴나스 이후에 로마 천주교회의 신학으로 넘어갔다고 늘 일깨워 주셨는데 그 이후에 신학적인 흐름을 이어가는 맥락이 없어지고 말았지요. 구약도 최의원 박사와 같은 분들께서 율법도 문자적인 이해가 아니라 정신적인 이해가 필요하다고 가르쳐 주셨는데 요즘은 그런 것이 없습니다. 그저 문장 하나 가지고 따지는 것은 마치 중세 시대에 소피아 성당 꼭대기에 천사가 몇이 앉을 수 있냐는 논쟁과 같고, 여자에게 영혼이 있냐 없냐를 따지는 신학자들의 허구성을 보게 됩니다. 허구입니다. 목회 현장과 아무런 연결이 없는 것을 가르쳐서 뭘 할 수 있겠다는 말입니까? 그것으로 신대원생들에게 가르쳐서 뭐하겠다는 것입니까? 먹은 대로 토하는데 신학생들이 무엇을 배우고 가르치겠습니까?

박 국장 : 칼빈대학교의 전신이 총회야간신학교에서 칼빈신학교를 거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동문들이 약 1만여 명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들에 대한 모교의 정책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김 총장 :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해서 동문들을 돕고자 합니다. 우리 동문들이 학교에 와서 공부를 하기로 마음만 먹으면 도울 수 있는 길들이 많이 있습니다. 구체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외국이나 국내의 원격교육을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여하튼 우리나라의 교육관련 법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해서 도울 것이며, 이미 외국 대학교와 학점 교류 등이 이루어진 대학을 통해서라도 동문들의 요구를 충족시켜 드릴 것입니다. 학위와 관련된 문제도 가능합니다. 학위를 주는 평생교육원이 정식으로 학교에 있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합니다. 제가 확실히 약속드립니다. 제3의 길도 있고,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우리 학교가 할 수 있는 길이 많이 있습니다. 학교에 오면 길이 있습니다.

박 국장 : 총장님과의 대화는 한 편의 드라마와 세미나 같습니다. 오늘 성경 중심의 신학, 목회, 교회에 관한 지적을 감사드립니다. 성경의 핵심은 결국 선교인데 칼빈대학교의 선교적인 지향점은 어디에 있습니까?

김 총장 : 세상이 정말 많이 변했습니다. 그 흐름을 감지하고 그 흐름을 주도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과거에는 말씀만 가지고 선교지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지금은 ‘스포츠 선교학과’등을 통하여 선교지에 파송할 것입니다. 축구나 태권도 등을 통하여 선교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제일 큰 명제가 선교입니다. 성경의 지상명령이 최고로 중요합니다. 선교는 고난입니다. 어려워도 선교하고 섬기면 교회가 죽지 않습니다. 교회가 부흥합니다.
제가 섬기던 한울교회가 어려움을 겪을 때에 “하나님, 교회가 이 어려움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저에게 ‘성경의 지상명령’을 마음에 감동으로 주셨고, 20억의 사기를 당한 상태에서 선교사 3가정을 파송했습니다. 그것이 오늘의 한울교회로 성장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선교하면 성령님이 역사하시고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아무리 좋은 교육의 체계를 갖추어도 선교하지 않으면 죽습니다.

앞으로 칼빈대학교는 ‘복수전공제, 부전공제’등을 통하여 학생들을 전문인 사역을 할 수 있도록 해 나아갈 계획입니다. 이전에는 없었지만 이제는 칼빈대학교가 학생들의 길을 열어주고 동문들의 길을 열어주는 여러 가지 일들을 최대한으로 만들어 나갈 계획입니다.

박 국장 : 오랜 시간 인터뷰에 응해 주시고 귀한 말씀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총장님의 원대한 포부가 꼭 성취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데 1985년 용산캠퍼스 매점 아저씨의 얼굴과 목소리가 오버랩 된다. 그 분은 라면을 주시면서 “뜨거워요~~! 뜨거워요~~!”라고 하셨다. 오늘 칼빈대학교가 뜨겁다. 총장님이 뜨겁고, 교수님들이 뜨겁고 학생들이 뜨겁고 동문들이 뜨겁다. 성령의 뜨거움으로 한국교회를 개혁해 나아가는 칼빈대학교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참고로 칼빈대학교는 여러 대학교와 학술교류를 하고 있다.

A. 자매결연, 교수교환 및 양교 학력인정이 체결
1) 미국 시카고 소재 Northpark University & Theological Seminary
2) 남아공의 프리 스테잇 대학교 (University of the Free State)

B. 자매결연 및 학문적 성숙도모 : 필리핀의 Silliman University

C. 학술교류협정이 체결 : 대한 예수교장로회 총회 교단 산하 총신대학교

D. 학술교류협정과 상호 학점인정제에 대한 운영협약 : 대구의 대신대학교

E. 기타 협력 대학교
미국 Calvin Theological Seminary
미국 L.A 지역 Biola 대학, Concordia 대학,
미국 고든콘웰대학교
캐나다 Providence 대학(Manitoba 주)
Canadian International College (British Columbia 주)
필리핀 King’s College, 리갈대학교
중국 조장직업전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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